드디어 막이 올랐습니다. 쩐의 전쟁이 아닌 모바일os전쟁이 선포됐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구글 검색이 되는 구글폰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운영체제(os)를 모든 휴대전화에 탑재하는 것입니다.
2007년 11월 5일 구글의 회장 에릭슈미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구글은 노키아와 MS에 당당히 선전포고를 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구글은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안드로이드'의 개발 킷을 공개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총93억원이 걸려있는 안드로이드 개발 경진대회를 공모함으로써 모바일os시장에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구글은 세계의 단말기, 반도체, 이동통신 업체 34개 사를 묶은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란 글로벌 연합체를 구성해서 대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OHA의 목표는 분명하죠. 바로 휴대전화에 구글 자신들의 모바일os를 많이 넣는 것입니다.
현재 PC시장을 윈도우를 만드는 MS가 주도하듯이 앞으로의 모바일 시장은 모바일os를 장악하는 쪽이 분명 이끌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키아나 MS도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죠. 실제로 노키아는 구글과 연합전선 구축 의사를 비춤으로써 MS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노키아는 언제든 구글의 OHA에 연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심비안으로 현 모바일os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노키아가 순순히 포기할리 없으니까요.
이에 대한 MS의 반격도 재미있습니다. CEO 발머는 지난 달 미국에서 열린 정보통신전시회인 CTIA에서 윈도우 모바일이 설치된 삼성의 '블랙잭2' 스마트폰을 직접 시연했습니다. 윈도우 모바일은 기존 pc운영체제인 윈도우와 유사하다는 것이 최대 강점입니다.
하지만 심비안과 윈도우 모바일은 모두 유료os입니다. 단말기 제조업체 측에서는 분명 부담스러울 수 밖에 습니다. 구글이 노리는 점이 바로 이겁니다. 구글은 모바일os를 무료로 배포해 시장을 장악한 다음, 무선 인터넷서비스에 광고를 붙여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취할 것입니다.
국내 시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단말기를 제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OHA의 창립멤버입니다. 웃긴점은 삼성전자는 심비안의 지분 4.5%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이에 질세라 LG전자도 단말기 수출 비중이 95%가 넘는만큼 다양한 모바일os시장을 예상해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세를 쫓는다고 할까요...
국내 이동통신사는 OHA에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구글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하고 있을겁니다. 구글 os가 확산될수록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당연히 시장을 장악하게 되니까요. 사실 이점에서는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칫하면 독과점 구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구글os자체를 승인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아무튼 모바일os시장을 두고 세개의 큰 손들의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승자가 누가 되었든 사용자 입장에서 봤을 때, 더 많은 선택과 효용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침 8시 30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 커텐 사이로 한쪽 눈을 지긋이 감고 있던 어제의 그를 오늘은 다시 볼 수 없다. 온갖 서류들로 도배된 그의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진행했던 각종 프로젝트 파일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이 일에 열성적이었는지 깨달았다.
어제는 갑작스런 그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의 가족들과 뜬눈으로 밤을 새고 그가 즐겨 마시던 자판기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고 나서야,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그의 죽음에 대한 인터뷰가 줄지어 있었다. 언론에서는 humanDB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다며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예상하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솔직히 나도 앞으로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다.
나와 릭키는 회사에서 30살에 처음 만났다.그는 여기가 세번째 직장이라고 능글맞게 웃어넘겼다. 릭키와 첫 대면한 자리에서 받은 인상은 한 마디로 미친놈이었다. 그는 세상을 하나의 끈으로 연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말인지 몰랐다. 내가 이해를 못하자 그는 노트북을 펼치며 자기가 설계한 모형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나의 DNA를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싶어요. 또 다른 나를 여기에 저장해서 내 생각, 내 기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이런 db들을 하나로 통합하는게 목표입니다."
그의 말을 들었을때 그가 왜 두번이나 회사에 짤렸는지 알만했다. 속으로 앞으로 이놈이랑 아는 척 하지 말아야겠다며 다짐했었다.
내가 그에게 반하게 되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출근하며 사무실 창문을 바라보면 그는 언제나 같은자리의 창문에 서서 한손에는 자판기 커피를, 다른 손에는 조그마한 수첩을 보고 있었다. 내가 궁금해서 물을 때면 아직은 보여줄 만한게 못댄다면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이 사람 의외로 순수한 구석이 있다는걸 느꼈다. 쑥쓰러움도 많이 타고 평소에는 내성적이지만, 이따끔식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펜을 들고 열심히 적는 모습을 보면 엉뚱한 면도 있었다. 나는 그와 조금씩 가까워졌다.
나와 릭키가 알고지낸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각각 결혼을 하고 서로의 가정도 꾸미고 아이들도 생겼다. 나는 아들을 낳았고 그는 딸을 낳았는데 언젠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그가 사돈을 맺자고 한 적이 있었다. 술김에 한 말인줄 알았는데, 그 다음날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사돈 얘기를 꺼냈을땐 난 기겁했다. 사실 릭키의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빠를 너무 쏙 닮아서 며느리로 삼긴 힘들어 보였다. 그러고보니 릭키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선수를 쳐 버린건 아닐까? 아무튼 그의 딸사랑은 정말 눈물나게 끔찍했다. 이틀동안 야근을 하고선 유치원에서 딸이 연극을 한다고 점심시간때 부리나케 달려나가는 일은 그의 일상이 되버렸다.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지만, 언제나 그의 아내와 딸의 사진은 반들반들하다.
나는 언제부턴가 릭키와 같은 꿈을 가지게 되었다. 릭키의 평생의 목표였던 humanDB프로젝트 연구소의 담당자가 되었다. 알고봤더니 회사시설 그가 애지중지 하던 수첩에는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있었다. 사실 이 연구소를 설립할 때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 둘이 가진 자금으로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가기는 매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국내외의 많은 IT관계자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 네티즌들까지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정말 그 분들에게는 지금도 앞으로도 쭉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릭키는 이런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그의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프로젝트의 진척상황이며, 연구소 분위기, 연구소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들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의 블로그는 많은 사람들이 찾게됬고, 그의 블로그가 인기있어지면서 프로젝트 성공에 대한 소망도 높아져만 갔다.
숨가쁘게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소로 돌아왔다. 나는 소신껏 답변했다. 그리고 릭키의 뜻을 대신 전했다.
"앞으로 humanDB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비록 릭키씨의 기술력은 없다해도 도중에 포기하는 건 그의 열정을 져버리는 일입니다. 나를 비롯한 연구소 직원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도 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계속 후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어쨌든 여러모로 잘 해결된 것 같아 다행이다. 사실 릭키가 이루어 놓은 많은 성과들이 그의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질까봐 내심 걱정했었다.
연구소로 돌아왔다. 이제는 깨끗이 정리된 그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박스 꾸러미 구석에 있는 수첩이 눈에 띄었다. 첫장부터 천천히 넘겨보았다. 그의 딸의 그림, 피아노 악보, 중간중간 황당한 낙서(오늘 점심은 짬뽕이 좋을까? 짜장면이 좋을까?), 아내에게 프로포즈했던 멘트, 그리고 나에게 처음 보여주었던 humanDB 계획도..
수첩을 덮고 조용히 그를 불러보았다.
"에라이~ 미친놈아."
세간에 타블로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구글은 한국에서 바텐더를 운영하고 있는 타블로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구글은 기어코 타블로에게 연락을 취하고 원하는 조건은 모두 들어겠다며 스카웃 제의를 한다.
타블로는 밤을 새가며 고민하며 결론을 내린다.
"내가 운영하는 칵테일 바가 있는데, 그 칵테일바를 구글플렉스처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시오."
구글은 황당하지만 타블로의 웹2.0적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에 타블로의 제안을 수용한다.
마침내 구글플렉스에 입점한 제1호 타블로's칵테일바.
칵테일 맛도 일품이지만, 웹2.0적인 자유분방함과 놀이터처럼 다양하고 창의적인 이벤트로 구글플렉스 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가고 싶은 칵테일바 1순위에 뽑힐만큼 명성을 얻기 시작하는데....
★★일촌 방문순회 공연중, 답장 바람★★
★★일촌 방문순회 공연중, 답장 바람★★
싸이 방명록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멘트다. 방명록을 구걸하는 멘트다. 그저 일촌이라는 관계로 인해, 쓸 말은 없는데 자기 방명록은 채우고 싶고 그러다보니 저런 식의 의무적인 멘트가 탄생한 것이다. 싸이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간관계가 넓어졌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싸이월드에서 맺은 인간관계가 꽤나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싸이월드를 통해 맺은 모든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될려나..)
싸이가 자랑하는 일촌시스템에 어떠한가..
사용자들은 일촌을 맺음으로써 나와 너 사이에 끈끈한 친분의 고리대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물론 둘 사이의 친분을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어느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일촌이라는 이름 하에 결속력을 단단히 다지는걸로 모잘라 지나치게 폐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싸이월드의 일촌은 너무나 강력해서 오프라인 상의 공동체가 아닌 외부인은 침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촌공개'를 빌미로 외부인은 그저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에 부딪혀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것이다. 어디 일촌공개 뿐인가. 방명록은 '비밀이야^^' 이 한마디면 만사 ok다. ('그것이 싸이월드가 가지는 특징이자 차별성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할말은 없다.)
현실에서는 일촌이라는 개념은 없다. 친하면 친하고 안 친하면 안 친한건다. 일일히 리스트로 적어넣고 선을 그어놓은 채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이런 면을 볼 때, 일촌이라는 척도가 인간관계의 선을 긋고, 대상들을 분류작업하는 비인간적인 지표가 될 수 잇다.
한번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제 싸이에 자료 올려놨습니다.cyworld.com/haakhaak' 요런식으로 글을 올려놨길래 들어가봤다. 막상 구하는 자료는 없고 투데이만 많이 올리는 낚시성 홈피였다. 왜 이들은 남들이 투데이 +1이 되주길 원하는걸까? 아마도 싸이월드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투데이와 페이머스가 자신의 인기를 대변하는 척도가 된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방명록도 마찬가지다. 방명록 페이지가 많이 넘어갈수록 자신의 인기도 비례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 인기 킹왕짱이야' 를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싸이월드는 나를 표현하는 '주관적인 도구'가 아닌 남들에게 과시되기 위한 '객관적인 도구'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투데이, 방명록에 집착하면 현실의 인간관계가 더욱 풍성해지는가?
생각없는 일촌순회에 의미없는 방명록으로 채우고있지 않은가?
싸이월드가 형성시킨 온라인 상의 인간관계 때문에, 오히려 오프라인 상의 인간관계가 소외받고 있지 않은가?
싸이월드는 변질되었다. 싸이월드에게 따라다니는 '가식월드'란 꼬리표는 떼기 힘들어 보인다.
같이 있어도 나는 외롭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싸이월드를 통해 진정한 커뮤니티를 추구하시는 분들에게는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대통령 선거에 대한 건전한 토론을 활성화하고, 네티즌 여러분들이 의도하지 않게 선거법을 위반하게 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대선 D-100일부터 선거일인 12월 19일까지 정치 기사의 댓글을 정치 토론장으로 일원화합니다. 이용자 여러분들의 많은 이해와 참여를 바랍니다.
'친절하신' 네이버께서 국민들의 선거법 위반을 막기위해, 대선 D-100일부터 정치란에 게재된 기사에는 기사 밑에 댓글을 달지 못하고, 따로 댓글을 달 수 있는 게시판을 마련했습니다. 네이버 뿐만 아니라 대형 사이트들도 정치와 관련된 댓글들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무튼 요즘 선거법이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실명제를 두손 들고 가장 반긴 곳은 정치인 집단입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사실에 근거한'비판, 감추고만 싶은 비밀의 폭로가 바로 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끊어버릴 수 있는 무기가 되었으니까요.
올바른 내용이기만 하면 익명이 아니라 당당히 실명을 거론하고 자기 의견을 말해도 떳떳할 수 있습까요? 글쎄요. 저는 힘들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신분이 드러나면 진실을 밝힌 사람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집단의 부조리를 밝히면 그 집단 내에서 소위 '왕따'를 겪게되지요. 다른 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딱지'가 생격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간혹 당할 수 있는 구타를 신고하게 되면 더 이상의 구타는 막을 수 있지만, 제대할 때까지 고참대접은 포기해라." 제가 아는 지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사회는 많이 참고 억누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악플의 시작은 현실계에서의 억누른 감정을 이상계에서 폭발시키는데서 나오는 역기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명제가 되었지만 악플은 특정인에게 고소당할 여지가 있는 노골적인 모욕만 사라질 뿐이고, 딱히 처별규정이 없는 애매모호한 규정 안에서 성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포털의 입장에서 보면 악플이 나쁘지만, 조회수가 광고수익 비용과 연동되기 때문에 방치해 두고 있는 점도 있습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운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오프라인의 예를 들어보죠. 범죄율이 높아서 범죄자를 쉽게 잡기 위해 국민 모두에게 이름명찰을 달게합니다. 이게 방법일까요? 아니죠. 그보다는 경찰인력을 증가시키고 보다 효율적인 수사방안을 마련하는게 대책이겠죠. 노골적인 악플에 대한 처벌은 인정하지만, 건전한 익명성을 사용하고 있는 누리꾼들에게도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실명제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는 좀 더 깊게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악플러는 못잡고, 정말 '표현의 자유가 필요한 곳'에서국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당하고, 권력과 부조리에 대항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마저 '선거법'이라는 하나의 잣대 아래에 입에 재갈을 물리게 하는군요.
(쓰고 보니 글이 너무 횡설수설 합니다..양해해주세요;;)
릭키, 군대 갈 날을 세고 있는 대학생.
그의 젋은시절의 고민
"행복이 무엇이냐 ?"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사고, 적당한 시기에 능력에 따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릭키, 흰 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중년의 남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왜 사는건지 왜 행복한건지 답을 내려고 하기에는 지구 어디를 둘러봐도 정답은 커녕 힌트조차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삶의 목적이란 어쩌면 도달하기 전에는 뚫을 수 없는 벽이더란 말이냐...
그는 남들이 세워놓은 행복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했었다. 이제 그는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파해치지 않기로한다. 행복을 이해하지 않고 그냥 느껴보려고 한다.
다시 태어난다. 행복이 삶의 이유가 아닌 삶의 이유가 행복이 되는 삶.
행복하게 '사는게' 의미가 아니라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게 의미가 되는 삶.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빈곤하지 않다. 그가 하고 싶은 일에 일생을 바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다.
그는 또 한번 새로운 삶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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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머리가 대부분이 되어버린 노년의 남자 릭키. 그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벗어던진 이후로 그는 그의 삶 자체가 행복인 것을 알게 된다. 그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행복은 멀리있는 것이 아닌 주변에 아니 자신안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책, 강연등 그는 그의 그의 그런 활동들로 행복해 지는 사람들을 보고 그 자신도 더욱 행복해 진다. 컴퓨터의 바이러스 처럼 하나의 행복이 배가되는, 흰머리 노년의 릭키는 행복 바이러스의 모체가 된 것이다. |
웹2.0의 개념도 어려운데 벌써 웹3.0이라니.. 정말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 다 . 웹3.0이 무엇이길래 우리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는걸까요?
웹3.0이란 단어는 2006년 영국 에딘버러에서 열린 국제월드와이드웹 컨퍼런스 오프닝 행사때 등장해 많은 전문가들을 흥분시켰다고 합니다. 웹3.0단어를 제안한 사람은 '버너스 리'라는 분입니다. 버너스 리는 웹3.0의 실체를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습니다.
"웹2.0에서 측정할 수 있는 벡터 그래픽의 오버레이를 가지고 있고, 거대한데이터 공간을 관통하는 집약된 형태의 시멘틱웹에 접근하려할 때, 여러분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데이터 리소스로 접근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시나요? 이해하기 난해하군요. 나름 제 방식대로 웹3.0을 정의해보겠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의 두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웹이 적용된 검색엔진' 입니다.
인공지능을 갖춘 웹이란 시맨틱웹을 말합니다. 즉, 지금까지의 검색엔진 구조와는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검색엔진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웹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친구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웹과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자신의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거죠.
예를 들어보죠. 게임을 좋아해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가 인터넷을 통해 프로게이머의 정보를 수집하려고 합니다. 기존의 웹2.0 검색엔진은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합니다. 프로게이머의 연봉, 프로게이머 미니홈피, 프로게이머 협회.. 등등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는 몇몇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웹3.0검색엔진은 어떤 결과를 제공할까요? 웹3.0검색엔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프로게이머의 전망, 프로게이머의 생활, 프로게이머가 되기위한 방법, 아이의 적성여부, 게임과 관련된 다른 직업들까지 추천해줍니다. 마치 진로문제를 두고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는 것처럼 말이죠.
위의 설명만 읽으면 웹3.0은 천하무적 같군요. 하지만 아직가지 웹3.0은 시기상조 같습니다. 웹2.0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웹에서 정보를 구하고, 웹에 참여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웹3.0은 웹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를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개념이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간의 괴리감이 현재는 큰 차이로 다가옵니다. 몇 가지 시스템적 난제가 있습니다.
1. 문장을 처리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 저장
2. 문장을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해석구조
3. 해석한 문장의 의미를 파악해서 올바른 답을 구하기 위한 논리회로
4. 이러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연산장치
언급한 네가지 외에도 시스템 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웹3.0이 추구하는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구현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인공지능 시스템은 무척이나 어설프기 때문이죠. 조심스럽게 예측해건대, 이러한 발전 속도로 따져본다면 앞으로 10년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군나다 우리나라 사용자들을 위해서 한글 기반인 데이터베이스를 저장하고 거기에 알맞은 표준논리회로까지 개발될려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실제로 외국에서는 웹3.0기반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여러 연구단체들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웹3.0은 사실상 의미없는 마케팅용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웹2.0 일부의 시각에게 받아야 했던 비아냥처럼 말이죠. 현재의 웹3.0은 그저 유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웹의 앞으로 10년이 어떤 식으로 발전될 지는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제 생각과는 반대로 10년 후에 웹4.0, 웹5.0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웹의 진화를 지켜보고 개인적으로 10년 후 이 글이 뻘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군인이 된다는 것에 `국가,민족`등 거창한 의미를 두긴 싫지만
신검은 그런 거창한 의미에 비해 너무나도 가볍습니다.
잠깐, 신검받는 과정을 이야기한다면,
몇백개의 객관식문항을 통한 인성검사와 신체등위를 판별하는 신체검사가 이뤄집니다.
인성검사는 OMR카드에 마킹을 하는 것이고,
신체검사는 신분인식카드를 통해 질병이 있으면
그 질병이 각 검사 과목마다 누적되어가며 등급을 냅니다
검사는.. 검사를 받는 사람이 상당히 능동적이어야 완전한 검사가 되어버립니다.
각 검사과목에 의사가 한명씩 있어, 그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의 유무를 말해야 합니다.
또한 피부과를 제외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은 진단서가 있어야 합니다.
의학적으로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체결함을 이야기해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인의 무지로 인해 신체결함이 축소될 수 있으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질병의 경우, 잠재적인 위험이 있기에
국가는 이에 검사방법을 피검사자에게 수동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무지로 인한, 잠재적인 질병이란 건 일반인의 경우 그에 따른 결과는 자기의 것이 되겠지만,
국가는 검사에서 합격한 자의 신체를 2년간 빌려가는 것이기에,
국가가 그 신체의 부정적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또 국가가 나서서 검사를 철저하고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검사자가 능동적으로 질병에 관한 자기정보를 제공할 때에 돈이 든다는 점입니다.
돈이 없는 자는 질병에 관한 자기정보를 제공할 여유가 없으며,
찾고자 할 의지도 돈 있는 자에 비해 빈약합니다.
결과적으로 검사는 평등하지 않게 됩니다.
국가는 각종 시설이나 예산을 들여 더욱 더 정확한 검사,
아니 일반병원의 종합검진 수준의 검사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군대는 보수적인 곳이지만, 분명히 개혁이 필요한 곳입니다
|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글을 접하게 됩니다. 그 글 중에는 나름대로의 의견을 제시하는 글도 있고, 단순한 친목 도모를 위한 글도 있습니다. 그 글들의 서두에는 자기 자신이 쓴 글임을 명시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표적 표현인 "저는~~"이 요즘에는 "나는~~" 으로 많이 대체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은 자기 자신을 낮춰서 상대방을 높이는 말투입니다. "나는~~" 의 경우는 그와 반대입니다. 이 차이를 상하 관계의 유무로 인식해서 혹자는 권위주의가 사라지는 증거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보는 인식이라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인식은 바꿔 생각하면 다른 사람보다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뜻도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좀 더 높은 위치에 둠으로써 더 드러나 보일려고 하는 심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런 표현으로 과연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역설적인 일이 간혹 존재합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시작한 일이 그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점점 잊혀지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두드러지는 사람일수록 쉽게 싫증을 느끼고 외면당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나"와 "저"의 차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역설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
또한 누군가의 위에 서있기를 좋아합니다.
열등감은 그를 채찍질하여 더욱더 발전하게 만들죠.
B는 "다같이 행복해야 한다" 라는 주의입니다.
굳이 위아래 따질것 없이 다같이 룰루랄라~
A보다 발전속도가 느려도 자신은 A보다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A와 B가 싸울때의 서로의 주장은 결국 이렇게 귀결납니다.
A : "내가 한거 내가 먹겠다는 건데?"
vs
B : "좀 인간적으로 생각해라"
결국은 이런거죠.
둘의 주장을 속으로 속으로 깊게 파헤쳐보면
근본적으로 성격차이에 있습니다.
잘난사람이 좋은걸까요?
착한사람이 좋은걸까요?
착하고도 잘나기 까지한 사람이 되면 정말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힘든 것일까요?



